유로화, 버핏, 원화약세와 '역사의 수레바퀴' [백석현의 환율 노트]
독일 자동차 업계의 현실과 유로화 강세의
배경, 버핏 포트폴리오에서 얻는 힌트, 원화 약세의 견인차로
성장한 서학 개미의 영향력을 파헤칩니다.메르세데스 벤츠, BMW. 한때 강남 소나타라고 불릴 정도로, 좀 있는 사람들 욕망을 채워준 프리미엄 브랜드입니다. 신뢰와 기술력의 상징, 독일 차라는 점이 공통점입니다.◆ 위기의 벤츠와 BMW에게 찾아온 기회BMW는 1차 세계대전 중 바이에른에서 설립됐는데 처음에는 차를 만들지 않고, 항공기 엔진 회사로 시작했습니다. 로고의 파란색과 흰색이 상징하는 것이 하늘과 프로펠러, 바이에른 주의 깃발입니다. BMW는 전쟁 중에 독일 공군용 항공 엔진을 집중 생산했습니다. 그러나 독일이 패망하면서 회사의 사업도 몰락했습니다. 이때 오토바이 엔진, 자동차 엔진으로 사업을 다각화해서 생존했습니다.그러다 또 2차 세계대전이 터졌고, 나치에 협조해야 했습니다. BMW는 다시 예전 특기를 발휘해서 항공기 엔진 생산에 주력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이 또 패망했습니다. 전쟁 기계를 만들던 BMW도 책임을 져야 했고, 그렇게 또 위기가 왔습니다. 그랬던 회사는 1960년대에 내놓은 스포츠 세단이 선풍적 인기를 얻으며 재기할 수 있었습니다.벤츠는 자동차 회사로 시작했지만, BMW와 마찬가지로 전쟁 중에는 군용 트럭, 장갑차, 항공기 엔진, 잠수함 부품을 대량 생산하면서 기술적 진보를 이뤘습니다. 전쟁으로 공장은 전부 파괴됐지만, 기술력이 있으니 전후 재건 과정에서 프리미엄 브랜드 자동차로 재탄생했습니다.그랬던 벤츠와 BMW의 아성이 서서히 무너지고 있습니다.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자동차의 패러다임이 내연기관 차량에서 전기차로 전환되는 과도기를 맞아, 중국의 전폭적인 지원을 얻은 중국 신생 브랜드들과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핵심 배경 중 하나입니다.◆ 독일의 재무장 선언 ... 유로화 상승의 기폭제하지만 이대로 죽으라는 법은 없습니다. 이들에겐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려준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바로 우크라이나 전쟁입니다. 특히 미국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국가들을 향해 우크라이나도 너희가 지키고 너희 안보도 스스로 책임지라며 손 떼겠다고 위협합니다. 그간 전쟁을 일으킨 원죄를 반성하고 전쟁하지 않는 나라를 지향하면서 군사력이 허술해진 독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결국 올해 3월에 독일이 반응했습니다. "이제 우리 재무장하겠다"라고 선언했지요. 유로화 급등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독일 정부가 방위산업에 많은 자본을 투입하겠다는 것인데, 독일 자동차 업계의 사업 환경이 너무 악화되었던 터라 이들이 사업모델을 다시 방위산업으로 전환하거나 다각화하는 것을 고민하게 됐습니다. 이들에게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굴릴 절호의 기회가 찾아온 것입니다.: Bloomberg >◆ 버핏이 픽(pick)한 주식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면흔히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매매하는 사람들은 실패하기 쉽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사람들은 실패 위험을 낮춥니다. 요즘처럼 전세계 주식시장이 뜨거운 랠리를 펼칠때, 너무 올라 부담을 느끼는 투자자가 이성적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열광하는 테마주를 피하고 저평가된 테마나 주식을 찾는 것도 방법입니다.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가듯, 시장에서 한때 열광한 테마가 차갑게 식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 다시 뜨기도 하기 때문이지요. 현재는 주류 업종, 에너지, 헬스케어가 시장 관심에서 멀어져 있습니다. 주류 산업이 관심에서 멀어진 이유는 소비자의 음주 습관 변화, 건강에 대한 인식 변화, 소비 세대 교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주요 소비층으로 성장한 밀레니얼 세대, Z세대의 음주 문화가 바뀌면서 무알콜·저알콜 음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 것입니다. 인구 대국 중국 변수도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관공서 공식행사 음주 금지, 내수 부진에 따른 수요 약화가 술 소비 하락으로 이어졌습니다. 이러한 변화로 투자자들이 예전처럼 주류 업종을 '안정적 소비재 피난처'로 보지 않아 관심에서 멀어졌습니다.에너지 산업은 화석연료 기반 기업들이 ‘탈탄소’ 압박과 수요 불확실성, 전환 투자에서 생기는 부담으로 투자자들이 미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헬스케어 산업은 약가 인하 압력, 규제 불확실성, 코로나19 특수 이후 성장 동력 약화 인식 등이 투자심리를 짓누르면서 성장주 대열에서 밀려나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수레바퀴는 돌아갑니다. 장기 투자자에게 시간은 내편입니다. 주류 산업은 인류와 마지막까지 함께 할 산업입니다. 신흥시장(아시아·아프리카) 중산층이 확대되면서 프리미엄 주류 수요가 다시 증가할 수 있고, 건강·저알콜·비알콜 음료가 주류 기업의 신성장 축으로 자리 잡을 수도 있습니다. 규제 완화 혹은 중국의 지도자 교체기에 소비문화 회복이 동반될 수도 있습니다. 에너지 산업은 지정학적 리스크(공급망 봉쇄 또는 에너지 안보 위기)로 인해 전통 에너지 수요가 급증할 가능성이 열려 있고, 화석연료 기업들의 탈탄소·재생에너지 전환 성공, 정부 정책이 에너지 안보 혹은 전환 투자에 보다 우호적으로 바뀌는 경우도 부활의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헬스케어 산업은 유전자치료, AI 의료기기, 만성질환 치료 혁신 등이 본격화되거나 의료비 부담이 정책적으로 완화되고 민간의 지출이 증가할 경우, 거시경제나 금융시장 불안 속에서 방어적 자산으로 헬스케어가 재평가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한때 시장을 지탱했던 주류·에너지·헬스케어 테마가 지금은 이런저런 이유로 투자자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역사의 수레바퀴가 굴러 소비 문화·기술 혁신·정책 전환·지정학 리스크라는 촉매가 다시 작동할때 시장은 이들을 다시 주목할 수 있습니다.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도 이들 업종의 기업들을 담고 있습니다. 주류 업종에서는 코로나 맥주를 보유한 Constellation Brands, 에너지 업종에서는 Chevron, Occidental Petroleum Corporation(이하 OXY) 같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고, 헬스케어로는 DaVita가 있습니다. (10년 보유하지 못한다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했던 버핏의) 장기적 관점에서 그 중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OXY인데, 버크셔가 매입한 평균 단가보다 현재 주가가 더 낮아졌기 때문입니다.◆ 원화 약세 견인차, 서학 개미지는 법을 잊은 듯이, 달러화가 원화를 상대로는 도통 내려가지 않습니다. 최근 달러·원 환율 상승 배경을 크게 3개 꼽으면 서학 개미, 외국인, 심리(엔화 약세 및 한·미간 합의에 따른 한국의 대미 투자)를 들 수 있는데, 서학 개미 영향이 생각보다 큽니다.지난 10월 한 달간 서학 개미들의 미국 주식 순매수가 사상 최대였는데, 정확히는 9월 17일부터 급증하기 시작했고 11월에도 식지 않았습니다(SEIBRO의 "미국 주식" 결제금액 기준). [그림2]에서 원화 가치와 코스피가 기존의 상관관계를 무시하고 따로 가기 시작한 시점도 9월 17일 이후입니다. 지난주에 미국 나스닥이 하락했음에도 10월의 매수 속도와 맞먹었고 11월 10일까지(9/17~) 하루 평균 3억 달러를 순매수했습니다.: Bloomberg >올해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매수는 1~4월 중에도 집중됐는데 4월 9일 달러·원 환율이 장중 1,487.6원에 고점을 찍은뒤 가파르게 떨어지자 4월 24일부터는 순매도로 돌아선 뒤, 9월 중순까지는 순매수 금액이 제로에 가까웠습니다(연초부터 4/23까지 하루 평균 2억 달러 순매수). 4월 9일 이후 달러 약세 압력이 강하게 나타나기 전까지 원화 가치 약세가 뚜렷했던 기간에 서학 개미의 미국 주식 순매수의 역할이 상당했던 것으로 해석됩니다.9월 17일부터 11월 10일까지 미국 주식 순매수액만 대략 110억 달러인데,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공개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국내 최대 기관투자자의 3분기 미국 주식 총운용자산(AUM : Assets under management) 증가액이 130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것과 비교하면 서학개미들이 얼마나 무서운 속도로 미국 주식을 사들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총운용자산 130억 달러는 순매수액이 아니라 가치 증가까지 반영된데다 3개월치에 해당합니다.한국의 무역수지 흑자와 비교해도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올해 한국의 무역수지 흑자(1~10월)는 564억 달러이고 해당 기간 영업일이 201일이었으니 하루 평균 2.8억 달러인데, 최근에는 수출업체들이 달러 매도를 미루는 경향이 있으니 서학 개미의 평균 달러 매수액보다 적은 금액이 시장에 풀리는 셈입니다. 어떤 계기가 있어 서학 개미들의 미국 주식 투자가 한풀 꺾이기 전에는 달러·원 환율이 좀처럼 내리기 힘든 환경입니다.